사진방/제주의 풍광

우도의 봄

제라* 2009. 4. 8. 17:38

 

봄빛 짙어가는 우도의 모습 속에서 이 땅에서 자라 억척같은 삶을 키워온 어머니의 꿈을 보다.

 

봄날의 하늘은 여전히 흐리멍텅하니 고운 빛깔 잃어 시름시름 앓는 이 같고...

바다로 내린 빛은 덩달아 바다빛조차 삼켜버렸으니 동병상련인가 보다.

 

두텁게 가리고 가린 품 속으로 한기 머금은 바람 헤집고 들어와 앉으니

시린 하늘에 내려앉은 가슴이 일어설 기력까지 잃어버리고...

참으로 간사하여라.

치고 뻗은 능선을 조금 올랐을 뿐인데 어느새 알고 도망친 바람 대신 눅눅하게 젖은 육신만 헐떡거린다.

그나마 올라선 비탈에서 만난 우도의 바람이 소금기 대신 시원함만 남기고 모른 채 물러선다.

육신의 찌꺼기 그리 뒤집어쓰고도 부족함에 눈이 멀어 여전히 끌어안으려 동동거림이 가소로울 뿐.

 

이젠 벗어던지리라 마음 다잡아 보지만 뒤돌아 벗어나는 뱃길에서 간사함에 다시 마음 접었으니

그저 봄바람 따사로운 날까지 끌어안고 가야 하겠지.

 

하 얇은 고무옷에 의지하며 여전히 뼛속까지 파고 드는 한기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이 땅의 어머니는

내 꼬라지에 헛웃음만 짓겠지 싶다.

조금만 추워도 몸 사리고 햇살 슬쩍 반짝거리면 금새 덥다 손사래치니

몽돌 사이 조그맣게 피워낸 불줄기에 언몸 녹이던 마음이야 어떠할꼬.

 

길게 모아 들이킨 큰숨의 자맥질로 깊은 어둠의 끝까지 하강하고 뒤돌아 나오는 그 길고 긴 시간.

터질 듯이 퍼떡거리는 심장을 눌러가며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을 따라 치오르는 순간까지

생명줄 놓치지 않으려 버팅긴 한숨을 몰아 토해내는 숨비소리.

그 깊게 가라앉아 잠수 중이던 어머니의 숨들이 모두 일어나 웃을 일이다.

 

세월에 씻긴 몽돌의 고운 선은 어머니의 지친 몸을 맡긴 쉼팡이 되었을 터인데

그 빈 자리에 뿌리 내린 우도의 들꽃과 눈맞춤 하느라

삶의 버거움을 숨에 섞어 토해 놓고 떠난 자리의 휑휑함을 몰랐었다.

 

꽃소식이 자자한데 여전히 겹겹이 애워싼 애증의 무게만큼일까?

아니면 쓸데없이 끌어안고 와 걸음마다 어깨를 짖누르던 삼각대의 무게만큼이었을까?

아니 어찌 인내로 살아낸 세월의 깊이를 그것과 견줌인가!

 

내 상처만 커보여 차마 견줄 바 없는 삶의 골을 기웃거리며 어머니의 갈라진 상처 위를 타벅거리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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