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가을로 가는 차귀도

제라* 2008. 10. 29. 23:06

 

부리까지 선명한 매의 모습으로 바다에 납작 엎드린 녀석은 얼마큼의 세월을 그리 살았을까!

워낙 시선을 잡는 그 모습에 차귀도하면 지실이섬의 매바위를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섬에선 어느 것 하나 명성에서 빠질 정도로 부족한 곳들이 없겠습니다만

차마 발 들이지 못했던 것은 쉬 나설 수 없었던 일상의 버거움 때문이었다고 치부하고 넘깁니다.

 

지척에 두고 살면서도 아직 밟아보지 못한 터라 집안의 일까지 밀어제치고 나선 길.

왕래는 생각과 달리 수월했습니다.

수시로 낚시꾼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사전 예약도 필요없이 포구에 자리한 매표소에서 내방객이 생길 때마다

왕복 10,000원 요금으로 오가는 배가 대기 중이라 한번 발도장을 찍고 나니 언제나 마음 닿으면 나설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간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이 대세이더니

막상 날짜가 잡혀 나서니 그닥 쾌청하지 못한 주말의 하늘이 심적인 무게를 안고 떠나는 내 심기를 조금은 읽은 듯...

 

 

찌푸린 하늘만큼 텅빈 포구는 한 가득 짜증을 담아내고 있는 듯 합니다.

단풍색 짙어가는 가을의 주말을 함께 할 어부와 통통배는 죄다 포구를 비웠으니 단조로운 아침이 싫은가 봅니다.

 

 

 

 

차귀도로 들어갈 도항선의 선장님!

"선장님~ 사진 한 방 들어갑니다!" 하였더니 멋진 포즈로 화답하여 주십니다.

저 선한 웃음만으로도 바다만큼 넓은 그분의 배려를 미리 엿볼 수 있습니다. 

 

 

 

 

언제 봐도 멋진 모습입니다.

멀고 먼 옛날부터 웅비를 꿈꾸며 한라를 지키고 선 녀석의 모습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습니까.

섬 사람이라서, 이곳에서 나고 자라서 너무 행복합니다. 

 

 

 

 

누운섬(와도)의 모습입니다.

본섬으로 들어가면서 담은 거라 반대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앉았습니다. 

 

 

 

 

일반적인 코스인 포구가 아니라 강태공들이 포인트로 즐기는 곳에서 암벽을 치고 올랐습니다.

그래서 생작이긴 했지만 어느새 가을이 든 섬은 누렇게 억새도 한풀 기세가 꺾이었고 힘을 잃어 허리굽은 녀석들이 많아

앞으로 나감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섬 전체를 돌아보며 갈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함에 구석구석을 훑어볼 수 있었답니다.

 

한가로운 강태공은 드리운 낚시대를 통해 어느 만큼의 세월을 낚았을꺼나...

 

 

 

누운섬과 등대, 시야가 흐려 멀리 살짝 실루엣만 자랑하는 한라 정상까지 저 너머에서 나를 보고 웃습니다. 

 

멀리 차귀도 정상에 위치한 등대의 모습이 보입니다.

가을색 짙은 띠와 억새도 바람을 타고 춤이 한창이고 섬을 타고 넘는 바람도 신선하니 발걸음이 어찌 아니 가벼울꺼나. 

 

섬과 함께 한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며 숱한 밤을 불밝혔을 등대는 한가로운 오수를 즐기는 중입니다.

갑작스런 내방객들의 소란스러움에 설핏 깬 잠이 대수롭지 않음을 확인하곤 다시 눈을 감습니다.

 

 

 

 

멀리 수월봉의 모습도 흐릿함에 묻혀 선명하게 잡히지 않습니다.

맑은 날이면 저 멀리 수평선 너머의 땅까지 가 닿지 않을까요!

 

 

억새도 바람을 타고...

열심히 바람타는 녀석들이 한층 신명이 났습니다.

그 너머 비양도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옵니다. 

 

 

 

 

 

누운섬을 차귀도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제가 보기엔 양 팔을 벌리고 아이를 보듬어 안기 위한 어머니의 그것이 연상됩니다.

한없이 포근하고 안기면 어떤 시름도 죄다 잊을 듯 그리 넉넉한 내 어머니가...

 

 

 

 

도항선의 선장님은 곧바로 차귀도를 벗어나지 않고 섬 전체를 한바퀴 돌아서 멋진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몇해 전 친정아버지와 가족들이 함께 차귀도 앞 바다에서 배낚시를 즐겼는데 그때 선장님께서도 차귀도를 전체 돌며 장관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수월봉 앞까지 가서 올려다본 수월봉의 모습과 매바위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나들이에서 다시금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베풀어 주신 만큼 선장님께 기쁨으로 배가 되어 돌아가길 바랍니다.

 

 

참으로 장관입니다.

이리 가까이에서 녀석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올까요!

입에선 탄성이 절로 흘러나옵니다.

이쁜추룩 고고한 척하던 체면치레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입을 막는다고 멈출 탄성도 아닙니다.

 

 

 

 

짧은 시간 아쉬움을 뒤에 남기고 다시 본섬으로 배를 돌립니다.

늘 그곳에 있었지만 번잡한 내가 찾아보지 못했음에 이리 아쉬움이 큰가 봅니다.

배의 발목을 잠시 붙잡고 싶지만 그 또한 욕심이 아닌가 합니다.

잠시 한낮의 지루함에 얕은 단잠으로 꺼떡거리던 포구의 등대가 부산스럽게 잠을 털어냅니다.

 

 

 

 

역시나 차귀도 앞 바다에서 부는 바닷바람에 익은 준치의 맛은 일품입니다.

땟깔 곱게 단장하고 바람을 타며 건들거리던 준치 발들의 장난이 비오는 날의 아이들 흙탕물 발장난처럼 요란합니다.

 

 

 

아침 출발은 꽤 잔잔한 물결이었으나 귀향하면서 차귀도 한 바퀴를 돌고 나올 땐 배멀미로 속이 다 뒤집어질 지경이었습니다.

그나마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들에 넋을 잃고 눌러대는 셔터에 몰입하면서 위기는 넘긴 듯합니다.

그래도 기회만 닿으면 기필코 다시 섬으로 갈 겝니다.

그 속에 묻어든 고운 추억들을 잊지 못해 다시 발도장 찍겠지요.

 

차귀도에 남긴 추억에서 가을은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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