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담쟁이 단풍들다!

제라* 2007. 11. 23. 14:49
조금은 울적한 날에...
날짜:
2007.11.23 (금)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은...

가을이 치달아 이른 곳, 그곳에선 단풍이 붉게 타고 있다.

 

봄과 여름, 가을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달려온 그 댓가만큼 오늘의 풍성함을 가슴에 안을 수 있기에 더욱 가을이 가고 있음이 아쉽다.

 

봄처럼 새싹을 올리는 기쁨이 있어 싱그러운 반가움도 아니고, 여름의 뜨거운 열정처럼 열렬하지도 않지만 오는 듯 그리 짧게 쉬 자리를 내어주고 가는 털털함에 더욱 가슴 시리다. 싸한 동장군의 기세가 아니라 해도 그 나름의 본분을 다하고 쉬 물러서는 풍성함을 넉넉하게 담아낸 그 너른 가슴을 보았기에 짠한 그리움으로 벌써 가는 끝자락을 놓지 못하고 주절거리고 앉았다.

어이 그리 쉽게 날 버리냐며 응석 섞인 투정도 부려보지만 아쉬운 눈길 한번 주질 않는다. 그리 쉬 가시느냐고 잠시 더 머물러주면 안되겠느냐고 아직도 가을걷이 끝나지 않은 들판에서 손을 내저어봐도 잡히는 것은 차가운 바람 자락 뿐.

 

아직은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자부심으로 지키고 앉은 사무실 한 편에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앉은 내 허허로움이 붉게 타는 담쟁이잎에 걸렸다.

 

아직 벗어던지지 못한 초록물색이 살짝 감도는 녀석을 보면 속 쓰린 안타까움이 못난 내 처지와 닮아 안쓰러움이 더하고, 이미 모든 상념 씻어내어 붉게 타는 잎을 보면 차마 가슴 한구석 놓지 못한 미련을 들킨 듯하여 민망하다.

찬가운 들판을 맨발로 걷다가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너무 차 놀라 꿈에서 깨듯 그리 황망한 마음으로 가는 계절의 옷자락을 붙들고 싶다. 수시로 내려가는 기온이 너무 빨리 동장군을 몰고온 듯 하여 진저리를 치며 등을 돌려도 이미 앞질러 그렇게 계절은 깊숙이 겨울로 치닫고 있었다.

 

코감기로 잔뜩 막혀 버거운 숨쉬기가 아직 살아았음을 느끼게 하지만 가끔 그렇게 막힌 숨을 입을 헤 벌리고 토해내는 것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어...

처절한 몸부림으로 가는 계졀의 뒤를 쫓아봄도 이렇게 아직 살아 숨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터이니 북풍에 밀려 멀어져가는 가을 뒤를 쫓아갈 볼까.

그가 가는 곳이 어디쯤인지 궁금하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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