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농투성이의 행복

제라* 2007. 12. 24. 16:41
가을걷이 막바지에 즈음하여...
날짜:
2007.12.24 (월)

예전, 부족한 것이 많았던 시절에는 "대학나무"라는 별칭으로까지 불리던 밀감나무였다.

집에 밀감나무 몇 그루만 있어도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는 부의 상징이었으며 또한 누구나 입에 넣기 힘들 정도로 귀해 임금님을 위한 진상품으로도 쓰였던 귀하신 몸이었다.

허나 모든 것이 풍부해지고 먹거리가 국경을 넘나들며 이젠 싼 중국산에 의해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가는 골칫덩어리가 되어간다. 작금의 현실이 흙에 뿌리내리고 사는 농투성이에겐 서글프기만 하다.

 

봄이면 꽃향기 그윽하여 밀감 밭에 들어서면 참 행복해진다.

꿀 또한 으뜸으로 밀감꿀은 항이 진하고 그 맛 또한 독특하다. 지금은 향수도 개발이 되어 유채꽃 향수와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특히 내겐 늘 가까이 했던 향이기에 쟈스민보다 더 많이 쓰는 향수가 되었다.

 

깊어가는 가을 날, 파란 하늘 아래 노랗게 익어가는 녀석은 행복이다.

서리 내리기 시작하고 설핏 첫 눈을 맞으면서도 즐거움으로 수확하던 예전과 달리 과잉 생산과 더불어 다른 과일의 풍작으로 올해는 처리 곤란한 애물단지로 전락했지만 지금도 내겐 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수확의 대가를 받을 수 없다손치더라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그 노고의 산물을 껴안고 살아갈 수 있음도 또한 행복이다.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은...

나는 가을이 익어간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살아오는 동안 내가 발 디디고 살아온 이 땅에서 얻은 직접적인 교훈이기에 쓰면서도 흙냄새가 나고 달큰한 밀감을 한 알 입에 넣은 듯 하여 곧잘 인용한다.

 

파란 하늘 아래, 노랗게 가을이 익어간다.

 

지난 봄과 여름, 내가 흘린 땀의 결실인 셈이다. 혹여 병충해나 태풍으로 그 가지에 달린 가을의 풍성함이 손실될까 노심초사 마음도 졸이지만 수확만을 위해 가을을 기다리진 않는다. 자연의 일부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땅을 지키기 위한 수단일 터이나 수확하는 기쁨과 나누는 기쁨을 동시에 얻을 수 있기에 작은 행복의 씨앗을 뿌리고 그 결실로 즐거운 것이다.

아직은 부모님의 그늘에서 살지만 그 분들의 노고로 얻어진 땅이기에 그 가치 또한 내겐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큰 것이다. 허니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것에서 작게는 주위와 함께 나누는 것도 부모님 덕분이니 이 작은 결실을 오래도록 큰 것으로 간직할 몫은 내 것이다.

 

농투성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진 않으나 오랜 세월이 흘러 부모님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나는 이 땅에서 노란 황금알을 따고 있으리라.

행복지수:
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

'일상의 단편 > 생각 자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로 가는 차귀도  (0) 2008.10.29
가을과 함께 석양빛에 물들다...  (0) 2008.10.14
담쟁이 단풍들다!  (0) 2007.11.23
하루가 저물어...  (0) 2007.10.22
가을, 깊은 만큼 익어가는...  (0) 2007.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