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태풍 나리의 뒤끝...

제라* 2007. 9. 18. 21:54
하나가 아닌 여럿이...
날짜:
2007.09.18 (화)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은...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한 인간이기에 그 강력함에 그저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동부 지역에만 국한되어 쏟아진 물폭탄의 힘에 너무나 처절하게 쓸린 과수원과 하우스를 바라보면서 황망했는데, 뒤이어 엎친 데 덮친다고 태풍 나리의 피해는 겨우 복구해 놓은 친정을 다시 초토화시켰다. 거기다 제주의 전 지역을 휩쓴 태풍의 위력은 광령 무수천의 지류가 범람하면서 시댁의 3천 평의 과수원과 2천 평의 과수원을 그대로 관통하여 수확을 코 앞에 둔 극조생의 밀감 나무가 뿌리 채 뽑혀 뒹글고 있었다. 그리고 물길이 지난 곳에는 깊은 웅덩이가 패이면서 물을 가두어 새롭게 연못 몇 곳이 생성되어 있었다.

거기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야 안을 수 있는 커다란 돌들이 그대로 밀감 나무를 밀고 쓸려 온통 돌밭이 되고 말았다. 허리가 동강난 커다란 방풍림은 30년 수령의 커다란 밀감 나무를 베고 누워 허연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 두 그루가 아니다. 어찌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음이니 그 황망함이야 말로 다할 수 있을까. 커다란 나무라 해도 기계톱의 위력이면 물리칠 수 있을 것이나 기계의 힘을 빌릴 수 없는 곳의 커다란 돌들을 어떻게 몰아내야 할 지 감내할 수 없다. 창고 두 곳은 가슴까지 물이 차 올랐으나 시간이 지나고 지나는 태풍이 가고 나면 맑은 날 청소를 할 수 있어 복구는 문제가 아니나 이미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 또한 고역이다. 경운기와 파쇄기, 또 물에 쓸려 사라진 농약과 농기구들은 이미 커다란 손실이다.

비가 잠시 멈춘 일요일 저녁, 시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내가 퍼 담아낸 물은 그 양이 대단했다. 또한 물과 함께 창고로 들이닥친 찌꺼기들은 퍼 담아내고 또 치워내도 끝이 보이질 않았다. 휩쓸려간 자재가 아까운 게 아니라 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더욱 골머리를 앓게 했다.

 

장화의 키를 넘기는 질퍽함에 빠져들며 돌아본 과수원은 그야말로 과관이었다. 동사무소에서 피해 상황을 접수한다고 하여 부랴부랴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지만 가슴에 짖눌려 오도가도 하지 않는 그 답답함은 여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다만 늙으신 시부모님께서 한 평생을 살아오신 집을 떠나지 않고 지났다는 것과 사람이 무탈하여 근심이 줄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려 하나 처참한 과수원의 상황은 꿈 속에서 다시 만날까 겁이 날 정도이다.

피해 상황 접수와 함께 근거 자료 제출을 요할 수 있어 카메라에 담은 부모님의 전 재산은 그렇게 자연의 힘 앞에 무참히 휩쓸려 살아온 세월의 결실을 고스란히 물길에 내어준 기록을 남긴 꼴이다.

친정에 이어 시댁의 피해 앞에 서고 보니 자연의 힘 앞에 너무나 나약한 인간임을 실감한다.

팔을 걷어붙이고 막상 그 속으로 뛰어들긴 했으나 하루 이틀에 결판낼 수 있는 일감이 아니니 그저 막막함으로 돌아보시는 부모님의 걸음조차 힘겨워 보인다. 

여럿 중에 어느 하나가 뛰어남과 남다른 지식을 겸비하면 그 빛이 여럿을 아우른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뛰어난 선장의 바른 판단력으로 항해가 순조롭다. 그 원만한 항해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나름의 자질을 드높여 선두를 따를 때 어려운 고비도 쉽게 넘을 수 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즉 선장의 순탄한 진두지휘로 순항만 하게 된다면 별다를 것 없으리라.

허나 삶이 그러하던가.

무기력한 인간이기에 더욱 절실하게 요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나 자연의 순리에 따르면서 미래를 내다보아 바른 판단으로 이끌어줄 이가 우리의 선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조건 명령하달의 수직 관계가 아니라 요소요소 필요한 인력의 자질을 끌어올려 전체가 흔들리지 않고 이 난국을 헤쳐갈 수 있게 하고 무지몽매한 농투성이의 허리가 곧게 펼 수 있도록 작금의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이미 지난 물 자리의 복구를 잘 마치고 새롭게 어린 나무가 자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나무와 함께 농부의 희망이 함께 자랄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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