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내가 선택한 당신.

제라* 2007. 8. 19. 12:56
나를 선택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날짜:
2007.08.19 (일)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은...

성큼 다가서는 여름에게 삐친 듯 가는 실눈으로 멋쩍게 봄기운이 뒷걸음치던 5월의 어느 날.

토실하게 여문 보리밭에선 무당벌레의 구애가 한창이었다. 어찌나 많은 수의 무당벌레들이 모였는지 보리밭이 아니라 그들만의 자치령을 보는 듯 했다. 하긴 사랑의 시기이니 어딘들 그들의 영역에서 제외될 것인가.

 

식물이나 동물들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한층 강하게 다음 세대로 대물림하기 위하여 좀더 나은 유전인자를 나름의 방식으로 찾는다고 한다. 대를 거듭하여 자신의 특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키우다보니 다른 종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모양새를 갖춘 녀석들도 많다. 또한 주어진 환경이 열악할수록 그 특징은 나름의 개성으로 독특함을 자랑한다. 그러한 모든 과정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발버둥인 것이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보다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남기 위한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노력인 것이다. 도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보다 뇌의 구조가 복잡하고 감정을 개입시켜 판단을 가름하는 인간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성숙한 성체로 자랐다고 하여 무조건 다음 세대를 위한 짝짓기가 아닌 조금 더 복잡하고 각양각색의 다양함을 보여준다. 하긴 그 사랑놀음을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사진에 담긴 녀석들의 행위가 세대를 잇는 고귀한 사랑의 행위이니 어설픈 주접은 불필요하리라. 거기다 성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도 아니니 다시 사진 앞에 돌아가 서자.

 

짧은 생을 살아가는 녀석들은 후대를 위해 강한 유전자를 대물리기 위해 상대방을 선택함에 있어선 무척 신중하다. 감성적이 아니라 말초적인 신경을 최대한 발휘하여 여러 조건에 합당한 상대를 간택하는 것이다. 사랑을 얻기 위한 물질적 공세를 퍼붓는 녀석들도 있고 자신의 장기를 상대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죽어라 용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얻은 사랑이기에 그들에겐 생을 마감해도 타당하리만큼 최대의 선물인 셈이다.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그들만의 사랑. 사랑의 행위 자체가 소중한게 아니라 삶의 목적인 후대를 위한 생의 마지막 행위이기에 더욱 강렬한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음이리라.

 

가끔은 연어의 삶을 떠올리면 살아가는 목적이 단지 본능을 따라 회귀하고 그 회귀로 얻음이 생의 마지막 목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숙연해진다. 치어의 본능이 자라 성체가 되도록 각인된 그들만의 독특한 여정을 따른다는 것이 어쩌면 자연의 순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생의 여정에서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동안에도 결코 지워내지 아니함으로 치어 때의 기억을 아니, 선대의 기억을 쫓아가는 생리. 그것은 학습이 아닌 본능인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앉았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그들만의 은밀함을 들킨 듯 황급히 보리 알갱이 밑으로 몸을 움직인다. 괜한 관심이었나 보다.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다른 개체의 관심을 그들은 원치 않았음이리라. 그들 역시 생의 어느 부분 잠깐 다른 종과의 조우일 뿐이니 그닥 특별한 관심을 표하진 않았다. 신기함과 색다른 감정으로 바라보는 내가 그들에겐 신기했으리니 우리의 시선은 눈높이가 맞은 셈이겠지.

그것으로 끝인 게다. 나름의 거사를 훔쳐본 나의 편협이 우스울 따름. 그들 역시 내가 보인 관심은 안중에도 없음이니 저이와 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그들 영역을 침범한 개체의 순간을 담은 증거만이 남았을 뿐이다.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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