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친정엄마 / 엄마와 딸이 함께 봐야할 국민 모녀 연극

제라* 2007. 7. 13. 22:03
연극, 친정엄마를 만나다.
날짜:
2007.07.11 (수)

< 친정엄마 / 고혜정 작, 문희 각색, 구태환 연출... >

 

“내가 엄마 땜에 못살아...”

“난 너 땜에 사는디!”

 

* 이야기는...

전라도 정읍에 사는 엄마와 서울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는 딸(주희)은 대학시절부터 집을 떠나 얼굴도 서로 자주 못보고 멀리 떨어져 산다.
엄마는 딸이 사준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한데 바쁘게 일하는 주희는 밥 잘 챙겨 먹으란 엄마 말이 그저 귀찮기만 하다.
상견례가 있던 어느 날, 힘들게 서울로 상경한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잘난 딸이 시어머니가 될 사람에게 ‘없는 집 자식’이란 업신여김을 받으며 못마땅해 하는 사실을 뜻밖에 알게 된다. 그러나 결국 결혼을 하고 아들아이를 낳은 주희. 엄마는 애 키우며 일하는 딸이 안쓰러워 딸의 집으로 자주 올라오게 되는데...

 

* 작품 소개...

국민배우이며 제주의 딸인 고두심님이 친정엄마로 분하여, 방송작가인 고혜정님의 자선적 이야기인 <친정엄마>를 무대로 올린 것이다. 이미 수필집으로 출판되어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한 책을 무대로 올린 것이라 한국적 정서가 물씬 녹아든 작품이었다.

친정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담백하게 담아내어 이야기가 잔잔한 흐름을 타고 있었으며 친정엄마로 분한 고두심님의 연기에 무대 자체가 살아서 함께 숨을 쉬는 듯 했다. 꾸며내지 않은 듯,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삶을 토해내듯 그렇게 무대를 누비는 연기자의 호흡이 관객을 울리고 웃기기를 반복하며 긴 삶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살면서 살을 찢는 고통과 피를 토하는 아픔도 천금같은 새끼와의 연줄만은 놓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허나 딸에 대한 끈질긴 애착은 붉게 쏟아내는 마지막 고통 속에 그녀 또한 친정엄마의 어서 오라는 손짓에 마지막 생명의 끈을 놓았다. 그 느낌에 그대로 빠져든 관객들도 무대의 흐름에 흠뻑 빠져 웃음과 눈물로 연극에 취한 2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일상에서 내가 만났던 사소한 에피소드가 바로 대사가 되었고, 삶아온 날들의 파고가 무대에서 다시금 되살아나 가슴을 후벼팠다.

 

객석을 빠져나오는 나의 두 눈은 꾸역꾸역 참으며 쏟아낸 눈물로 퉁퉁 불어있었다.

 

아가. 너, 이 길로 집 떠나믄 인자는 못 돌아온다.
인자 너는 내 품을... 영영 떠나는 것이다.


취직허고, 결혼허믄 인자 너는 친정에 오는 것이제,
너그 집에 오는 것이 아니여.


너는 시방... 이 엄마 품을... 떠나는 것이다.
영영 떠나서 인자 너는 집에 못 돌아오는 길을 지금 가는 것이여.
내 딸이 인자 이 길로 떠나믄... 영영 집에는 못 돌아오네...


- 서울로 딸 유학 보내는 기차역에서의 한 장면 ‘친정엄마’ 대사 중에서 -

가슴에 담고 싶은 것은...

친정엄마를 향해 딸은 끝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꺽꺽거리며 읊어댄다.

 

엄마는 나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건,
엄마가 아니어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엄마와 함께 하며 누군가의 엄마가 될 딸.

아내로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에서 딸은 결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악을 쓴다.

지지리 궁상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삶도, 한글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배우지 못한 삶도,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한평생 맞으며 살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그 삶도 싫고 또 싫어 결코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노라고 딸만을 바라보며 반생을 넘게 살아온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서슴없이 박는다. 그 지긋지긋한 삶은 쳐다보지도 않겠노라 다짐을 한다.

허나, 부족한 것 없는 듯 싶은 삶에서 친정엄마의 자리는 늘 돌아가면 언제나 반겨주는 넓디넓은 바다와 같은 사랑이라는 걸 미처 깨닫기도 전에 엄마가 된 딸의 친정엄마는 그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만다.

이미 오래전 귀하고 귀한 사랑스런 딸로 하여 잊었던 친정엄마의 부름에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자식 곁에 남고자 하는 바람을 접는다. 끝내 딸을 위한 맛나게 익은 김치 한 보따리를 남기고 딸의 곁을 떠나 그녀의 엄마 곁으로 간다.

 

한라아트홀을 가득 메운 대부분의 관객이 여성이었다.

나 역시 아직 어린 딸을 대동하고 다녀왔으나 연극이 내포하는 주제와 소재가 친정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니 당연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무대가 열리고 친정엄마가 죽기 전에 담가두신 김치를 받아든 딸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나의 혹은 객석에 앉은 수많은 딸과 친정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행복지수:
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형편없어요

'일상의 단편 > 생각 자투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대한 탄생... 그 뒷이야기  (0) 2007.07.24
봄날은 간다...  (0) 2007.07.20
짝퉁으로 만나서...  (0) 2007.06.26
제6회 한라식물전시회  (0) 2007.05.06
듬직한 대파꽃과 바람개비 같은 무꽃  (0) 2007.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