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늘 곁에 있어도 눈길 주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제라* 2009. 4. 29. 21:36

 

집중력과 관찰력이 부족한가 봅니다.

무엇 하나에 신경을 쏟으면 다른 것을 쉬 손에서 놓기 일쑤입니다.

한 때는 전신마취를 수차례 받은 탓이라 치부시 했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다른 탓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우스운 꼴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포장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눈에 드는 것에 충실하며 현실과 타협하고자 마음을 바꿨습니다.

의외로 그리하여 얻는 것도 생겼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자 하였기에 가끔씩 욕심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주 오가는 길목은 아닙니다.

가끔 시댁이나 친정 방문할 때 재래시장에서 필요한 장을 보거나 특별한 이유로 집을 오갈 때 간혹 지나는 길목입니다.

큰 아이가 중간고사를 보기 시작해서 우당도서관으로 배달을 하던 중 우연히 눈길이 가 닿았은 곳에 광대수염이 무리지어 핀 모습이 잡혔습니다. 그나마 차량이 서행해야 하는 곳이라 눈길에 든 것이지만 고운 모습이 확 시선을 잡더이다.

 

도심 속에 사는 녀석들이 꽤 됩니다.

길을 걷다 시멘트로 꽁꽁 포장된 인도의 갈라진 틈새를 어떻게든 비집고 치올라 온 민들레나 제비꽃을 볼 때면 그 가상함이 기특하여 슬그머니 미소가 입가에 걸리곤 합니다.

부러 집의 안팎을 단장하기 위해 키다리 나무나 국적도 잘 모르는 외래종의 작은 꽃들을 보면서도 미소가 자리하는데 어찌 그리 험한 곳에 뿌리 내리고 하루를 지탱하며 꽃을 피워낼 수 있음인지 참으로 경외감마저 들지요.

 

색색의 물색 고운 꽃들이 많고 한 눈에 들 정도로 미모가 뛰어난 녀석들이 많으니 이리 자리잡고 의연함으로 버티고 선 광대수염이 몇이나 발길 붙잡았을지...

흰빛은 바람 지나는 길목인지라 어느새 상처입어 만개한 모습임에도 물빛이 곱지 않습니다.

그래도 벌써 몇 해 전부터 터를 잡은 곳이었기에 저리 대가족을 이루었겠지요.

섬의 휑휑한 바람에 시달려 고만고만한 키에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참 대견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바쁜 아침길엔 그저 마음에만 두었다가 귀가하는 길에 우리집 대장에게 잠시 멈춰달라 부탁하였더니 흔쾌히 20여분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해 주더이다. 지나는 객들의 희한한 광경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들과 잠시 피곤을 나누었답니다. 아마 다음 해 봄부터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녀석들의 안부가 궁금할 겝니다.

 

그렇게 늘 곁에 있었음에도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는 관심과 사랑의 목마름에 대해 아무런 투정없이 묵묵히 지키고 선 그들의 하루가 이 땅의 생명있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일 겝니다.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은 것은 그 희망의 일부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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