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땅에 대한 사사로움

제라* 2005. 5. 14. 06:47

  

뿌린만큼 거둔다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근래에는 노력만큼의 댓가를 받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닌듯 합니다.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대지는

농부의 피와 땀만큼의 결실은 준다고 했지만

가끔 손해보는 장사를 하는 걸 보았습니다.

 

경제적 논리를 따지고

수학적 양을 저울질하고 싶지 않습니다.

 

농부의 딸로 땅에서 자랐고

농부의 아내로 흙에 묻혀 살고 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직장 생활과 농사를 겸하고 있으니

진정한 농사꾼은 못되는 편입니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주말을 혹은 법정 공휴일을 과수원에 몽땅 투자하는

너무나 무모한 겸업을 이행하고 있지요.

가끔은 직장 생활보다 농사에 치여

녹초가 된 채 한 주를 시작합니다.

젊은 나이에 얻은 관절염을 평생 업으로 삼고 살아야 할

내 남은 인생의 항로가 순탄치 못함에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한 해 열심히 쏟아 부었던 내 노고가

한 순간의 물가 동향과 시장 경제의 논리에

한없는 내리막으로 치달아

인건비는 커녕 그 해 농사에 투자한

비용조차도 건지지 못할 때는

죄없는 하늘만 탓하게 됩니다.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내 부족한 소지로...

 

늘 땅에서는 뿌린만큼의 결실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서든 치일 순 있으나

생명의 근원인 대지에서는 늘 풍요로움만을

내 노고의 댓가로 받고 싶습니다.

 

시부모의 땀과 노력으로 일군 땅을

맹지라는 이유와 친척간의 다툼을 이유로

어쩔수 없이 매각할 수밖에 없던 결정이

타당성 있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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