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방/제주의 버섯

버섯... 찻잔주름버섯

제라* 2012. 9. 16. 15:20

 

 

 

 

 

주말이면 어김없이 과수원으로 향하는 일과가 그리 썩 내키는 일은 아닙니다.

 

연로하신 시어르신께선 이미 힘에 버거운 일인 만큼 내 몫이겠거니 하면서도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이 아님은 저 역시 속좁은 아낙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그럼에도 도심이 아닌지라 밭을 오가는 길에 만나는 들꽃들이 종종 기쁘게 하고

비 온 뒤 끝 밭에서 자라는 버섯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을 담는 즐거움이 심신의 피로를 잊게 합니다.

 

매번 카메라를 꺼내들 만큼 곱거나 신기한 피사체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눈으로 보는 즐거움은 나설 때의 그 중압감을 죄다 잊게 합니다.

 

시어머님은 오늘도 여전히 비온 뒤 죽순처럼 자라는 검질 타령에 거친 숨을 토해 내지만

저는 쪼그리고 앉아 어떤 꽃이 피었는지, 어떤 모양새로 열매를 매달고 앉았는지 궁금함에

굴곡 깊은 삶에서 흘러나오는 그 한숨을 귓등으로 흘리곤 합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애기봄맞이와 닭의덩굴을 발견했던 날의 기쁨이 여전하고

꽃색 변이종을 찾는 날엔 농약으로 온몸을 마사지해서 알러지로 고생하더라도 개의치 않게 되곤 합니다.

 

다른 날과 달리 카메라를 꺼내들게 되는 날엔

녀석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가장 이쁘게 담아주고픈 마음으로 땡땡이치는 시간이...

조금 늘지요.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십니다.

- 이건 땅신인 지신어멍밥사발이여.

  사발이 고득 차시민 세상의 편안함이 지나침이요,

  사발이 중간이면 살기 좋은 시절이요,

  사발이 비어시민 어려운 세상이 올 거렌 헌다!

 

시어머님 눈에 새로운 버섯이 보일 때마다 활짝 웃는 모습으로 제 손을 잡아끄십니다.

- 이거 보라이. 니 이거 봐나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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