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방/제주의 풍광

길 위에서

제라* 2009. 12. 7. 23:56

가을이 깊어갈수록 시름 하나씩 털어내듯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길을 만들고...

 

홀가분함으로 겨울을 준비하던 나무들이 빈몸인 채 숲을 지키겠지요.

혹여 퍽퍽한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날에 다시 찾아가게 된다면 계절을 돌고 돌아 온통 빈가지로 허허로운 녀석들과

등을 맞대고 서서 지나간 어느 날의 아름다운 추억을 곱씹어볼 생각입니다.

두런거리는 울림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숲에 울리고 고요함에 묻혔던 다른 추억거리들이 깨어나면

너나없이 그와 나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친구들이 늘어나겠지요.

혹여 빈가지 가득 흰옷을 걸치고 있다면 봄부터 여름을 함께 하고 가을날 홀연히 떨어져나간 분신들에 대한 기억으로

저이들도 나와 같은 행복함으로 한겨울 추위를 녹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구불거리는 길 끝에는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숲을 지키고 선 녀석들이 기다리고 있을 겝니다.

다시 오겠노라 약속했던 나를 기억하고 숲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익숙한 내 발걸음에 귀기울여 줄 겝니다.

붉게 타올라 황홀한 모습으로 설레이게 했던 친구들의 모습은 예전과 다르겠지만

너무나 짧은 해를 아쉬워하며 오래도록 머물수 없었던 날의 못다한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 목을 빼고 기다릴지도 모를 녀석들이... 지난 날과 다름없는 반가움으로 오랜 벗을 반기듯 그렇게 반겨줄 것이라 믿습니다.

 

잠시 무겁던 발걸음 접어 내 체온을 맡기고 기대었던 녀석도 여전히 그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 겝니다.

 

 

 

나는 지금 지난 추억이 진하게 묻어나는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터벅거리며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만 숲 속 가득 울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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