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일탈을 꿈꾸는 날에...

제라* 2009. 9. 7. 16:20

 

드높은 파란 하늘색이 참 고운 날인데...

가을색 짙어가니 어제와 달리 하늘도 높아보인다.

예전 같으면 업무가 일찍 끝나는 이런 날엔 기를 쓰고 들꽃을 담으러 내달리곤 했는데

심란한 마음 때문인지, 쌓인 피로로 몸이 좀 피곤해서 그러함인지 내키지 않음에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운 색감으로 유혹하던 1100 습지의 한라부추의 얼굴을 애써 지우면서...

 

지난 7월의 중순, 지는 해가 고울까 싶어 가까운 이호해수욕장으로 달려갔었다.

말 등대가 마음에 들어 꼭 한번 곱게 담아봐야지 싶었는데 아직도 풍경 앞에선 기가 죽어 아무 생각없이 넋을 놓고 바라보기만 할 뿐, 제대로 느낌을 담아낼 수가 없다. 이번도 역시나 같은 우를 범하면서 시간만 축내다 돌아설 수밖에...

늘상 작품 속에서 멋진 풍경과 맞닥뜨린 사진가의 눈에는 설핏 무심한 일몰이 헛방일 것이나 이 순간 내가 보고 있는 풍경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높이를 낮추니 모든 것이 작품이요, 명작이다.

 

 

 

 

 

 

무거운 삼각대를 둘러맨 사진가 몇 분이 내 앞을 지나더니 열심히 샷을 날린다.

내가 못보고 지난 것들을 담아내는 모양이다. 넋을 놓고 쳐다보고 앉았다. 그들과 나의 시선의 차이를 가늠하려 애쓰면서!

그 또한 즐거운 구경이다.

 

포인트를 몰라서 언덕 위 지나는 객들의 다리품 쉴 자리에 머물렀던 나는 밋밋하게 타들어가는 일몰을 가슴에 담았다.

먹는 게 우선이라 간간이 들이키는 커피향이 참 좋다. 그와 함께 과자를 입에 넣으니 커피 맛이 한층 품격 높아진다.

입 큰 커피잔이라면 커피를 듬뿍 묻힌 크래커를 입에 넣을 수 있을 텐데, 그나마 크래커를 입이 터져라 집어넣고 커피 한 모금으로 목마름을 해소한다.

 

덩그러니 앉은 의자가 휑휑함으로 다가온다.

누군가 같은 풍경 앞에 커피향 함께 나눈다면 더 좋았을 터인데...

일상의 무미건조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날개를 달고, 전혀 우스울 것 같지 않은 농담들이 화기애애함을 돋울 터인데!

 

키다리 해녀상 밑에 앉으니 멀리 바다를 건너는 비행기가 보인다.

일탈을 꿈꿀 수 있음이 고작 비행기를 담는 것으로 끝이다.

말없이 이호 앞 바다를 지키고 선 해녀상도 오늘은 상념 깊은 일탈을 꿈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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