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단편/생각 자투리

봄꽃을 심으면서

제라* 2007. 3. 23. 19:59

3월로 접어들면서 지천으로 피어나는

봄꽃의 무리들을 욕심껏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오일장이면 다른 약속만 없으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쪼르르쪼르르 달려가곤 했다.

얇은 지갑을 자꾸 열어젖혀 보면서 오늘은 욕심내지 않고 화분 두어개만 사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막상 오일장에 들어서 사람이 다니는 통로까지 점령하고 앉은 고운 화분들을 보면

그만 이성을 잃고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화분들을 내 앞으로 당겨 놓는다.

눈인사 주고받은 녀석들은 모두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경제적으로도 여의치 않고 또 데려다 놓아도 비좁고 어설픈 화초 가꾸는 실력으로 태반이 죽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이성은 감정적 통제의 선을 넘어 야생화와 나무를 파는 곳까지 시선을 주고 있다.

그도 잠시 꽃값을 묻고 계산을 아무리 맞춰도 마음처럼 양껏 품고 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궁색한 꽃값 흥정에 빈지갑 속에서 모자라는 돈을 다시금 확인하곤

골랐던 화분들을 하나씩 내어 놓고 말았다.

아쉬움만 잔뜩 싸 가지고 돌아갈 참이다.

 

길게 화초 몇 그루씩 심을 수 있는 일자형 화분들과

다기로 구워낸 화분도 하나, 그리고 나무도 한 그루.

수선화와 히아신스를 선두로 구입하고 매번 오일장마다 적게는 만원 지폐 한 장으로,

많게는 5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크고 작은 꽃들을 집으로 들였다.

새색시 들이듯 매번 화분과 함께 송이도 얻어오고,

옮겨 심을 때 함께 넣을 퇴비도 봉지 하나를 구입했다.

끼니도 잊고 쪼그리고 앉아 서툰 몸짓으로 일일이 옮기고

구색 맞추며 이리저리 자리 바꿈도 해보면서 3월 봄볕에 시간을 보냈다.

매해 봄마다 이리 정성이지만 1년생 화초들은 대부분 꽃이 지면 죽어버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끈거리는 속을 다스려야 했다.

간간이 다년생 화초를 구입한 연유로 지난 해 사온 철쭉도 아직 건재하고

연한 주황색꽃이 예쁜 명자나무도 꽃을 피웠다.

비좁은 마당 한 편으로 오롯이 솟은 듯 앉은 우리집 정원의 크기는 고만고만하다.

이미 향나무와 애기사과나무, 동백나무, 소나무처럼 커다란 나무들이 자리를 잡았기에

따로 화분을 마련하지 않으면 콩나물 시루처럼

주인들이 자랄 공간조차 부족하기 때문에 더부살이조차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봄만 되면 마음이 들떠 새로운 꽃들이를 하고 싶은 마음에 매해 난리 법석이다.

이도 병인 모양이다.

봄마다 재발하는 난치병인 모양이다.

 

다음에 혹여 집을 새로 구입하게 되면 건평은 좁더라도 마당은 널따란 곳을 선택하고 싶다.

계절마다 다투며 피어나는 꽃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처럼 마당이 넓은 집을...

하긴 이미 마음에 그리 담고 살고 있음은 그들이 내게로 와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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